연구 및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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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북스타트(2003, 사토 이즈미)
20-01-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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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트

아가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북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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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이즈미(일본 북스타트 기획이사)


국제기독교 대학 교양학부 졸업

일본 최대 출판도매회사 닛판 서적부 근무

영국의 북스타트를 일본에 소개

2000년 11월 북스타트 시범사업 출범시 기획위원으로 참여

현재 일본 북스타트 기획이사




아가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 북스타트




제가 북스타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1999년 봄으로, 도쿄에 있는 영국문화원 도서실에서였습니다. 영국 잡지의 과월호를 들춰보다가, 마침 영국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북스타트 관련 특집 기사를 본 것입니다. 그때 저는 “좋은 운동이네. 역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영국이야!”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기사 중의 여기저기에 ‘0세 아기’라는 말이 나와서, “만1세도 되지 않은 아기들이 책을 읽을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1세 미만 아기들은 아직 글을 읽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단어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림책에 “사과”가 나와도 그것이 “달콤한 신맛이 나고, 주방 냉장고에 있는, 바로 그 과일”이라는 인식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북스타트 운동을 연구하게 되면서도 그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스타트 운동의 시찰을 위해 영국에 갔을 때, 북스타트의 발안자인 웬디 쿨링 씨에게 의문을 털어놨습니다. 그때 웬디 씨가 말한 것이 지금도 제 마음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Can babies read books?”라고 물었습니다. 영어 단어 ‘READ’를 쓴 것이죠. 그때 웬디 씨는 “북스타트는 아기와 함께 책을 읽는(READ) 운동이 아니랍니다. 함께 하는(SHARE) 운동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READ는 활자를 읽고 이야기를 즐기며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혼자서도 가능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SHARE는 아기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므로, 둘 이상, 즉 아기와 대면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북스타트는 아기와 누군가가 마주해 그림책을 펼칠 때의 즐거움이나 정감어린 말을 건네는 시간을, 아기와 누군가가 함께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서 몇 권의 일본 그림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도 일부 극성스런 부모들 사이에는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기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자고 말하면, 이런 오해를 받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읽혀 빨리 문자를 배우도록 한다거나 사물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엄마에게 중압감을 주고 아기에게도 부담을 주는 운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 북스타트를 추진해 가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 중 하나가, 이러한 북스타트의 따뜻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북스타트지원센터의 이사장이자 아동문학자인 마츠이 타다시(松居 直) 씨는, 북스타트를 통해 전달되는 그림책의 역할이 과거의 자장가나 전래동요와 흡사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관계자들은 모자(母子)보건사업에서도 강조돼 온 ‘말 걸기’의 중요함과 동일한 메시지를 북스타트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사랑받고 있다는 점, 살 가치가 있다는 점 등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장 신뢰하는 사람(엄마와 아빠, 또는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그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아기는 자라서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타인을 소중히 생각하며, 사람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아기 때의 이러한 시간의 축적 여부가 자라서 어떤 식으로 사람과 만날지, 어떻게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옛날처럼 대가족 생활을 한다면, 부모가 바빠도 가까이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기를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형이나 누나, 옆집 아주머니가 말을 건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기의 건강한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시간들을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는 갖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쿄와 같은 도회지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나 핵가족화로 인해 엄마 홀로 아기를 돌보는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자장가나 전래동요조차 계승되지 못하는 지금, 하루 종일 아파트 안에서 아기와 씨름하는 엄마들에게 북스타트 운동이 “아기와 함께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세요”, “부디 도서관에 놀러 오세요”, “무엇이든 어려운 점이 있을 때 육아 지원센터에 상담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북스타트는 아기와 더불어 그림책 펼치는 시간을 갖는 계기가, 지역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에게 주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책 강연회를 할 때 참가하는 엄마들은 본래부터 그림책에 관심이 높은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만이 아니라, 지금껏 그림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이나, 알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한 장소가 바로 몸의 건강을 체크하던 보건소입니다. 보건소에서 몸의 건강뿐 아니라 아기와 보호자의 마음건강도 챙기자는 발상, 여기에 북스타트 운동의 독특함과 특별함이 있다고 봅니다.


그림책이 들어 있는 북스타트 가방 세트를 받았던 보호자들은 이런 감상을 털어놨습니다.


• 만1세도 안된 아기가 그림책을 보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직 한 마디도 못 하는 아기가 그림책을 손에 들고 노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 매일처럼 혼자서 육아에 매달려 있던 참에, 뭐랄까, 스스로에게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눈물이 났다.

• 지금까지는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었다. 보건소 정기검진 때 모든 아기와 보호자들에게 빠짐 없이 북스타트 가방이 전달되는 장면을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함께 자라는 다른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고 바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 보건소의 북스타트를 계기로 도서관에 다니게 되었다. 새로 이사를 와서 동네에 친구가 없었는데, 도서관의 아기 이야기 모임에 참가하면서부터 친구가 생겼다.

• 북스타트 덕분에 보다 많은 책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북스타트가 시작된 지역에서는 보건소에서 책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속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도서관의 아기 그림책 코너를 충실히 한다든가, 아기용 전래동요 배우기 모임이나 이야기 모임의 개최, 보건소나 아동회관에 그림책 코너를 만드는 지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1세 미만뿐 아니라 만1세 반, 만2세나 3세 등 정기검진 때마다 그 연령에 맞는 그림책 목록을 배포하기도 하고, 그림책을 나눠주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북스타트를 계기로 어린이가 성장함에 따라서 많은 그림책들과 즐겁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보호자들 역시 지역사회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심하고 육아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북스타트를 시작할 무렵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놀라운 변화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왜 북스타트에 매료되었는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합니다. 저는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만1세가 되기 전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만12세 때까지,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어머니의 목소리와 잠자리에 든 남매들의 조용한 숨소리, 그리고 <곰돌이> 시리즈나 <모험자들> 등의 책을 귀가길에 선물로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책 읽어주는 방법이 특별히 빼어났을 리 없었지만, 따스한 음성과 함께 새겨진 기억은 커다란 애정의 원천으로 가슴에 항상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에 넘친 목소리, 책을 읽어 주시던 그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으로 북스타트 운동이 각지로 확산되는 가운데, 북스타트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운동으로 정착됨으로써 모든 아기와 보호자들에게 행복한 생각과 기억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안심하고 즐겁게 육아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토 이즈미(佐藤 いづみ) Satou Izumi

서울 북스타트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내한

교보문고 강연 (서울 강남점, 200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