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및 세미나
1992년 영국에서 북스타트(Bookstart) 운동이 출범했을 당시 사람들의 주요 관심은 운동의 명칭이 말해주듯 ‘책(book)'이라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기들로 하여금 아주 어려서부터 책과 친해지게 해주면 그들은 자라서도 책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당시 이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그때까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했지요. 그래서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를 실험해보기 위한 작은 규모의 시범 사업이 실시되었고, 결과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진도 투입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북스타트 프로그램은 영국 전역의 65만 명에 달하는 1세 아기들 모두에게 실시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북스타트 운동을 출발시켰던 사람들의 당초 생각이 대부분 옳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국 쪽 연구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책과 친해진 아기들은 책을 좋아하는 아동으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림책과 이야기책을 가까이 하고, 이야기 들려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집중력이 높고 언어습득도 빠르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북스타트의 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그러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성취도가 높다는 연구보고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알려지고 확인되면서 북스타트 운동은 지금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오늘,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해보기 위한 첫 시범 사업이 시작됩니다. 대상 지역은 오늘 이 출범식 행사가 벌어지는 서울 중랑구입니다. 실행주체로는 순수 민간 기구인 ‘북스타트 한국위원회’(Bookstart Korea)도 구성되었습니다. 이런 준비 작업들은 북스타트 운동이 높은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 운동이며 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아기들에게도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라는 기대와 판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이 옳은 것인지 어떤지는 물론 이곳 중랑구를 대상으로 한 시범 사업의 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결과가 확인되면 우리는 이 운동의 점진적 확산과 광역화에 착수할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이 북스타트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운동을 전국화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출범시키는 북스타트 운동은 영리 사업이 아닙니다. 실행주체인 ‘북스타트 한국위원회’는 영리업체가 아닌 공익 시민 조직이며, 이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한국 북트러스트’는 민간 사업체들과 개인 독지가들로 구성되지만 그 활동은 영리 추구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우리의 북스타트 운동과 그 프로그램은 조기 교육이나 영재 교육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런 동기와 목적을 모두 배제합니다. 우리는 한국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장난감책과 그림책들을 무상으로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성장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사회적 평등을 높이고자 하며, 부모의 소득 격차에서 발생하는 궁핍과 박탈의 경험이 아기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줄이고, 기회의 편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할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혜택의 사회적 평등을 높이기, 이것이 우리가 시작하는 한국 북스타트 운동의 독특한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의 경우에도, 영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책’은 여전히 핵심적 관심사입니다. 우리에게 ‘책’은 아가들을 바르게 잘 키우기 위한 지적 정서적 노력과 수단의 총체적 은유이자 상징입니다. 아이들이 성장기에 습득하고 함양해야 하는 기본능력(basic skills)과 관계해서 책과 책 읽기는 다른 어떤 매체나 매체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불가결의 성장 도구이자 경험 형식입니다. 또 우리의 북스타트 운동은 책만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들이 책을 통해 아가들과 맺는 관계의 인간적 풍요화를 기하고자 하며, 책과의 친교를 통해서만 발견되는 소중한 인간적 능력들을 심화시키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상, 만화, 게임을 비롯한 각종의 문화산업적 신매체 형식들과 문화의 시장 메카니즘이 우리의 성장 세대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 영향은 인간적 능력의 무서운 마비와 박탈까지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박탈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자라는 세대가 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힘을 갖게 하는 일은 우리의 큰 사회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북스타트 운동의 두 번째 주요 목표이자 의미입니다.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통해 어려서부터 책과 친해진 아이들은 그런 박탈과 마비로부터 자기들을 방어해낼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아가에게 책을”이라는 우리의 운동 표어는 이렇게 해서 우리 아가들을 ‘사람“으로 잘 키우는 일과 그것의 양보할 수 없는 사회적 중요성을 동시에 담아내는 언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