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및 세미나

연구 및 세미나

북스타트 - 책, 아기, 가정을 가깝게 맺어주기(2003, 크리스 미드)
20-01-20 16:10
553
북스타트

북스타트 - 책, 아기, 가정을 가깝게 맺어 주기 



크리스 미드 (영국 북스타트 사무총장) 



* 이 글은 2003년 9월 22-23일 제1회 북스타트 서울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한 영국 북스타트 사무총장 크리스 미드 씨가 교보문고 서울 강남점에서 행한 강연원고이다.


--------------------------------------------------------------- 

열 살 때 나는 학교를 싫어했는데, 그 시절 아버지는 매일 아침 나와 여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곤 하셨다. 아버지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 차(茶)를 가져다주고는 책을 읽어 주셨다. <반지의 제왕>이니 <데이비드 코퍼필드>니 하는 책들도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습관이었다. 아버지의 이런 책 읽어주기는 내가 동생과 돈독해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책과 차를 사랑해오고 있다. (물론 나는 학교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난 후, 내게 최고로 좋았던 일들 중 하나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을 함께 나누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온기 따스한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두꺼운 종이로 만든 책 속의 그림을 함께 보면서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꾸르럭 꾸르럭 소리를 내고, 책장과 씨름 하며, 눈에 익은 그림들이 보이면 손으로 가리키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기쁨이다. 


직장에서 내가 해온 일은 책과 책 읽기를 장려하는 일이었다. 첫 직장은 서점이었고, 이후 15년 동안 한 공공도서관에서 <창조적인 책 읽기>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 다음엔 런던에서 '시(詩)의 사회'라는 조직을 운영하느라 6년을 보냈다. 그러니까 나는 더 넓은 독자층에게 문학의 세계를 열어주는 일을 지금까지 해온 셈이다. 


그런데 나는 책과 사람을 맺어 주는 목적을 가진 전국적인 자선 단체 북트러스트에 참여하면서 새로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 책을 주는 북스타트 프로젝트를 발견했던 것이다. 


북트러스트가 시작했고 또 지금 운영을 맡고 있는 북스타트 계획은 책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서 시작되었다. 


10여 년 전에, 북트러스트 어린이 담당 부장이었던 웬디 쿨링은 유아 학교를 방문해 4살, 5살짜리 어린이 몇 명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쿨링은 이 아이들이 책을 펼 줄도 모르고 책 장 넘기는 데도 익숙하지 않아서 책 속의 그림들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이 책을 읽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은 책 장에 있는 글이, 다른 아이들이라면 찾아 낼 수 있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모든 어린이가 어릴 때 책을 만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책이 담긴 가방을 이제 막 부모가 된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렇게 해서 북스타트가 탄생했다. 


북스타트는 다음과 같이 운영된다.


醍?가정에 무료 책 가방을 공급하는데 가방은 보건소에서 나온 가정 방문자가 아기의 생후 8개월 건강 검진 때 배포한다. 이로써 북스타트는 모든 가정이 아기들과 함께 책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보장한다. 


면포로 만들어진 가방에는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인 도서관에 초대하는 초청장과, 가장 훌륭한 아기 책들 가운데서 골라 뽑은 두 권의 영아도서, 그리고 아름다운 삽화가 담긴 상담 자료가 들어 있다. 상담 자료는 아기 책의 재미와 이점에 관한 책자이다.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 아기에게 딱 맞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이는 기막히게 품격 있고 효율적인 아이디어이다. 


북스타트 운동은 웬디 쿨링과 북트러스트가 1992년에 전개했다. 출발 초기에 <버밍엄 대학>, <사우스 버밍엄 보건소>, <버밍엄 공공도서관> 등이 제휴했고, <로알드 달 재단>과 <언윈 자선 신탁> 같은 자선단체의 후원도 받았다. 


운동이 시작되던 첫 해, 부모와 아기 양육자 300명이 보건 센터에서 북스타트 꾸러미를 선물 받았고, 그렇게 꾸러미를 받은 가정들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효과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는 무엇인가?


우선 무엇보다도, 아기와 함께 책 보기는 부모와 아기 모두에게 재미있고 보람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버밍엄 대학교 교육대학>이 발표한 초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과 함께 책 보기에 대한 인식 또한 상당히 증대되었다. 그리고 아기의 도서관 등록, 북클럽 이용, 일반적인 책 사용에 대한 인식도 높아 졌다. 


<버밍엄 대학>은 최초의 북스타트 아기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기본 평가> 시험을 받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아기들을 조사했다. 꼬박 5년에 걸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세심히 배려해 고른 동급생 경쟁 상대들 보다 북스타트 아기들이 <기본 평가>의 아홉 개 항목 전부에서 눈에 띄게 잘 했던 것이다. 북스타트의 혜택을 받은 아이들은 읽기/쓰기 능력과 셈 능력 모두에서 틀림없이 한 발 앞서고 있었다. 


20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돌연 대기업들이 돈 다발을 쏟아 부을 큰 사업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1998년에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가 3년 치 후원금600만 파운드를 북스타트에 제공했는데, 그 결과 2000년 여름까지 210개에 달하는 막대한 계획들이 진행되어 매 달 10만 권이 넘는 책이 배포되었고 영국 전역에 걸친 확산율은 92%에 이르렀다. 


우리는 <세인즈베리> 기금으로 후속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 결과, 


북스타트 꾸러미를 받고 나서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 준 부모들이 78%에서 91%로 증가; 


도서관을 찾는 횟수가 64%에서 85%로 증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방문);


도서관 회원수가 5%에서 31%로 증가; 


가정에서의 행동 변화, 부모/아기 돌보는 사람의 양육 기술과 자신감 향상;


교육 낙후 지역에서의 언어 습득 향상. 


북스타트는 출신 집단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아기와 함께 책을 읽도록 자극한다. (나이, 사회 계층, 인종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아기 보다 나이 많은 형제가 있는 가정,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가정 등 북스타트 운동은 전국 모든 가정의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다.) 소수 인종집단 응답자들의 활동 보고에서 가장 두드러진 증가가 있었다. (응답자의 28%가 독서량이 늘었다고 보고함.) 125명의 가정 방문 간호사들의 조사에 따르면, 97%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북스타트 참여가 매우 긍정적인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부모들은 북스타트 가방을 좋아한다. 가방은 기저귀를 담거나 쇼핑할 때 매우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책 읽기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어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가방을 볼 때 마다, '이런, 책 읽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아기와 함께 책 보기에 대한 우리의 조언이 있다. 이 조언들은 수많은 지역사회 언어들을 지원하는 우리의 웹사이트(www.bookstart.co.uk)에서 얻을 수 있다. 


우선 준비를 하세요. 아늑하고 조용한 장소를 선택한 다음, 책이든 동시(童詩)든 노래든 엄마하고 아기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을 고르세요. 처음이라 좀 부끄럽다 생각이 들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많이 연습 할수록 더 나아질 테니까요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아기가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끄세요. 


일상의 일로 만드세요. 매일 아기와 책을 함께 보도록 노력해요. 아기가 지겨워하거나 짜증을 내면, 아기가 기분이 내킬 때 다시 해보세요.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다음, 아기가 알고 있는 그림 속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가령 강아지나 공 같은 것들이 있겠지요. 이렇게 하면 아기가 말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예요. 


이제 곧 아기가 책에 대해 배울 거예요. 책은 앞에서부터 시작하고 책장을 계속 넘기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곧 아기가 책장을 넘기고 말 해 보려 할 거예요. 


중요한 건 정확한 단어가 아니에요. 읽는 게 서툴다 생각되겠지만, 중요한 건 엄마의 목소리와 친밀감이니까 걱정 마세요. 


재미있는 목소리나 소리를 내보세요. 즐겁게 놀아야죠! 아기는 동시나 노래에 맞춰 움직이고 뛰는 것을 좋아해요. 


아기는 똑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걸 좋아해요. 이야기를 반복하면 아기가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명심하세요. 책은 단지 잠자리에서만 읽어주는 게 아니랍니다. 쇼핑을 가거나 차를 탈 때에도 책을 가지고 가세요. 


북스타트는 매년 영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다. 북스타트는 교육 프로젝트, 보건 프로젝트, 문학 프로젝트로서 자금 지원을 받아 왔다. 북스타트는 유연성 있는 계획이다. 그리고 출판사들이 책을 무상 지원하거나 할인된 책을 공급함으로써 진지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기쁜 일이다. <베이비 캠벨>은 3년 동안 모든 북스타트 가방에 책 한 권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 대신, 책 속에 '아기 책 우편 주문 서비스 전단'을 끼워 넣는다. 출판사에게는 사업 계획인 동시에, 부모들에게는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는 방법들이 늘어난 것이다. 


사실, 북스타트를 통해 아기 책의 수준이 극적으로 향상되어 왔다. 우리는 <부커 상>과 <복지작가 상> 말고도 매년 <아기책 상>을 운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중요한 것은 양질의 책이다. 모리스 센닥의 <괴불들이 사는 나라> 같은 그림책은 한 편의 서정시이다. 또 그것은 눈을 즐겁게 하는 그림들의 축제이며, 복합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강력한 서사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어떤 문학 작품과도 견줄만한 고전이며, 상상의 문학이 우리 삶의 여정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맛보게 해주는 기막히게 좋은 입문서이다. 


최근 우리는 북스타트를 발전시켜 북터치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북터치 프로그램은 시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기들의 가정에 특별한 자료들이 담긴 가방을 나누어 준다. 북터치 가방에는 책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 만지고 느끼게 하는 책, 점자가 새겨진 두꺼운 종이책이 들어 있다. 


북스타트 플러스는, 도서관이 북스타트를 통해 연계된 아기들을 위해 편성한 동시(童詩) 수업과 같은 모든 활동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만간 우리는 생후 18개월 전후의 어린이를 위한 북스타트 플러스 가방을 내놓을 작정이다. 그리고 3살짜리 아기가 자신이 고른 책들로 속을 채울 수 있는 나의 북스타트 가방도 선보일 것이다. 우리는 아기들을 북스타트에 참여시켜 온 만큼 아기들이 지속적으로 책과 함께 성장하길 바란다. 


책은 삶 전반에 걸쳐 중요한 것이다. 북스타트는 책에 대한 사랑을 처음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북트러스트의 목적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책에 끌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북스타트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의 북스타트가 출범하는 자리에 오게 되어서 기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한국의 북스타트 가방이 아름답다는 말을 해야겠다. 가방 디자인이 맘에 쏙 든다. 이 가방이 아기와 함께 책을 읽는 행복한 가정들을 더 많이 만들길 희망하자! 


2003년 9월 23일 


크리스 미드